나만 이상한 건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커피, 술, 회를 먹을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느낄까?
커피: 아메리카노가 가장 싫다. 다른 첨가물 없이 순수한 커피만 있으니 쓴맛만 강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말하는 커피의 다양한 풍미나 향은 전혀 모르겠고, 그냥 모든 커피가 똑같이 쓰기만 하다.
술: 모든 술에서 쓴맛과 강한 알코올 향만 느껴진다. 특히 소주 이상의 도수가 높은 술은 냄새만으로도 속이 미식거릴 정도다. 사람들이 말하는 술의 단맛이나 부드러운 맛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회: 모든 생선회가 똑같다. 아무 맛 없는 생살을 씹는 기분이고, 결국 초장 맛으로만 먹게 된다. 생선마다 다른 맛이 있다는 말을 들어도 전혀 구분할 수 없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 취향이거나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는 유전자가 결정하는 생물학적 특성이었다.
TAS2R38 유전자의 비밀
미각 수용체 유전자 중 하나인 TAS2R38에 따라 사람마다 쓴맛을 느끼는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 이 유전자의 변이에 따라 일반인보다 100배에서 1000배까지 쓴맛을 더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커피의 세계가 닫혀버리는 이유
커피에는 카페인을 비롯해 다양한 쓴맛 화합물이 들어있다. TAS2R38 유전자 때문에 쓴맛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 커피의 압도적인 쓴맛 때문에 다른 향이나 풍미를 거의 감지할 수 없다
- 원두의 종류, 로스팅 정도, 추출 방법에 따른 미묘한 차이가 모두 강한 쓴맛에 가려진다
- 결과적으로 모든 커피가 '그냥 쓴 음료'로만 인식된다
술에서 느끼지 못하는 단맛
많은 술, 특히 소주에는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가 첨가되어 있다. 하지만 쓴맛에 민감한 사람들은:
- 알코올의 강한 쓴맛과 자극적인 향이 다른 모든 맛을 압도한다
- 도수가 낮은 맥주 정도에서만 약간의 다른 맛을 감지할 수 있다
- 소주 단계가 되면 알코올의 쓴맛과 향만 남는다
생선회의 복합적인 맛
생선회에는 단맛, 감칠맛, 비린맛 등 다양한 맛이 있다. 하지만:
- 생선회의 비린맛과 미묘한 쓴맛이 다른 맛들을 가려버린다
- 특히 비린맛은 강한 향미로 인해 생선 고유의 단맛이나 감칠맛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 결국 무미건조한 생살의 식감만 남게 된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도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계셨다. 커피 맛을 전혀 모르시고, 술 냄새를 굉장히 싫어하신다. 이를 통해 이 특성이 모계 유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
술, 커피, 회의 맛을 모르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경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TAS2R38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쓴맛을 과도하게 강하게 느끼는 유전적 특성 때문이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차가 아닌 생물학적 현실이며, 이를 이해함으로써 나만의 미각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며, 각자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다른 미각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